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후라이드 치킨가게
짠맛의 원조
푸근하고 다정한 외모의 창업자 샌더스 대령의 KFC
KFC의 시작
KFC의 창업자 샌더스의 인생은 사실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6살에 도라가지고 12살땐 엄마가 재혼하면서 그는 이모에게 맡겨집게 되었습니다.
그는 13살때 학교를 자퇴하면서 안해본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군인, 청소부, 철도소방관, 변호사, 보험 세일즈맨, 램프 회사 사장등 안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일을 다양하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도 많이지고 그의 지역에선 그의 입지가 어느정도 잡힌 상황이였습니다.
1930년 어느 정유회사가 샌더스에게 켄터키주 코빈에 있는 주유소를 관리 해달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샌더스는 주유소를 경영하면서 핸, 스테이크, 후라이드 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0년뒤 1940년에는 지금의 KFC르르 만든 레시피를 만들고 압력솥에 닭을 튀겨서 선보였습니다.
당시 그의 레시피는 선구적이였습니다. 닭을 기름에 튀기면 30분이상 걸렸지만 압력솥에 닭을 튀기면 8분이면 가능했기
때문이였습니다.
1950년이 되었을때 그는 자신의 치킨을 프렌차이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샌더스는 전국 레스토랑 협회 워크숍에 매년 참석하였습니다.
샌더스가 워크숍을 다녀 오면서 아무 식당에나 들려 영업을 했습니다.
그의 레시피 프렌차이즈 제안은 1008번째까지 거절을 당하고 1009번째 드디어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951년 유타주에서 레스토랑을 하던 피트하먼에게 샌더슨은 프렌차이즈 사업을 계속 제안했습니다.
1952년 샌더슨은 호주로 가던중 하먼의 가게에 들려 직접 치킨 한마리들 튀겼습니다.
샌더슨은 치킨을 튀겨 맛을 보인 후 프레차이즈 제안을 하려 했던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샌더슨은 호주로 가야했고 시간이 없어서 치킨만 만들고 바로 호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도둑맞은 레시피
샌더슨이 호주에 가서 자리를 비운사이 하먼은 샌더슨의 치킨 레시피대로 치킨을 만들어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하먼은 치킨이름을 KFC로 짓게 되어습니다. 샌더슨이 켄터키 사람이였기 때문에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으로 이름을 지엇던 것이였습니다.
호주에서 돌아온 샌더슨은 이 상황을 알게 되었고 하먼과 프렌차이즈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하먼은 KFC 계약을 하면서 유타주 전체 독점 계약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샌더스와 계약을 맺는 가게들이 하니씩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샌더스
1956년 샌더스의 가게 바로 옆에 고속도로가 생겼습니다.
샌더스의 가게로 오던 차들이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더이상 샌더스의 가게로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샌더스의 가게는 매출이 나오지 않게 되었고 곧이어 가게를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샌더서는 살기 위해 KFC 프렌차이즈 사업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디에나 주에서 식당을 하는 클라우스에게 찾아갔습니다.
클라우스는 본인 레스토랑의 책임자였던 데이브 토마스를 불러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토마스는 KFC 치킨 판매를 반대 하였습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KFC 치킨의 짧은 조리시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샌더스와 계약을 맺기로 하였습니다.클라우스는 샌더스의 치킨을 판매를 하면서 초대박이 났습니다.
KFC 본격적인 시작
샌더스는 KFC 프렌차이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일반적인 사장님과는 다른 일들을 하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가맹점주를 섭외하고 가맹점을 돌아다니면서 레시피를 가르쳐주고 매장 관리를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트 하먼은 직원교육 메뉴얼 ,운영 메뉴얼, 조리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 하였습니다.
그리고 KFC의 상징인 치킨버켓을 만든것 역시도 피트하먼 이였습니다.
또 샌더스의 딸인 마가렛은 집에서도 치킨을 먹을수 있도록 테이크 아웃 전문 매장을 만들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이로써 1958년 플로리다에 KFC 독립 매장이 오픈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KFC의 레시피가 아닌 KFC자체 브랜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 KFC는 600개 매장을 오픈하게 되면서 거대한 프렌차이즈가 되었습니다.
프렌차이즈 사업이 거대해지고 매장이 많아졌지만 샌더스는 어느덧 78세의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때 존 브란운이라는 사람이 KFC 를 찾아왔고 200만 달러에 KFC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존 브라운은 KFC를 인수하면서 샌더스를 회사 고문 자리를 주었습니다.
KFC의 새로운 시작과 변화
존 브라운이 KFC를 인수하자마자 KFC의 프렌차이즈 수수료를 인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프렌차이즈 수수료로 광고를 더 많이 하였습니다.
그 당시 광고 모델은 샌더스가 되었습니다.존 브라운은 KFC 품질을 유지 하기위해 상품과 시스템을 전매장에 도입시켰습니다.이때부터 KFC는 주식회사가 되면서 지금의 KFC가 되었습니다.1970년 당시 KFC의 매장수는 약3000개였습니다. 당시의 맥도날드 매장수가 1000개를 겨우 넘겼었습니다.존 브라운은 KFC 회사가 너무 커지는 바람에 더 이상 경영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1971년 그는 KFC를 스미노프의 유통사였던 휴블라인에 KFC를 2억8500만 달러에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KFC 의 위기
KFC 회사가 휴블라인에 넘어가면서부터 샌더스는 회사 욕을 하고 다니게 되었습니다.샌더스는 주류를 판매하던 휴블라인 기업이 음식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회사의 창업자와 경영자간의 싸움은 소비자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이로인해 회사의 정체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그리고 KFC가 새롭게 크리스프 치킨을 내놓았을때 샌더스는 자신이 개발한 치킨이 아니라고 하면서 또다시 회사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맥도날드는 KFC를 앞게 나가게 되었습니다.
1980년 샌더스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샌더스의 레시피가 없었다면 지금의 맛있는 치킨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KFC 의 아버지 샌더스가 만든 치킨 공화국앞으로 KFC는 어떻게 될까요?수많은 프렌차이즈들 사이에서 살아남을수 있을까요? 아니면 KFC의 추락이 올까요?개인적으로 KFC 매장이 더 많아져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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