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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역사

(브랜드 스토리) 명품 브랜드의 부활 발렌시아가

by motomose 2024. 8. 10.

발렌시아가 로고

전 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민하게 만든 브랜드

비싸지만 사고싶어 알바를 탕진하게 만든 브랜드

명품 브랜드의 극적인 부활 발렌시아가

 

1. 발렌시아가 창업자 이야기

1895년 스페인의 헤따리아라는 지역에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밀수를 감시하는 배의 선원이였고 어머니는 제봉사였습니다.

발렌시아가는 다섯 형제 중에 막내였는데 그의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발렌시아가의 고향 근처에는 스페인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여름 휴가를 보내는 별장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의 고향은 북부의 마드리드보다는 덥지 않고 바닷가도 있고 해서 왕족과 귀족들이 오게 되었던 거였습니다.

왕족과 귀족들이 별장을 방문할때는 그들을 따르는 예술가나 상인들도 같이 왔었습니다.

그들은 여름 휴가철 내내 별장에 머무르면서 파티도 하고 모임을 갖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옷과 옷을 수선해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발렌시아의 아버지는 배의 선원으로 일을하면서 왕족이나 귀족들을 태울때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친분도 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의 옷을 수선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발렌시아의 아버지는 발렌시아가 11살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안의 형편을 돕기 위해 발렌시이가는 어머니의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 발렌시아가의 가족은 귀족인 카사토레스 후작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발렌시아가 집안의 가장 큰 고객이였습니다.

이 때 발렌시아가는 그 부부의 화려한 옷들을 관리하면서 패션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후작 부부는 패션 이외에 예술 작품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여름 별장에 벨스케스 고야 등등의 그림들 화보들 건출물 사진들을 전시 해놓았습니다.

이때 발렌시아가는 그러한 예숙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발렌시아가는 훗날 어린시절 보았던 예술 작품들들 자신의 디자인에 적용을 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어린 발렌시아가는 후작부인에게 파리에서 사온 옷들을 자신이 똑같이 카피해서 만들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을 들은 후작부인은 발렌시아가에게 원단과 장비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후작부인이 찾아갔을때는 정말로 발렌시아가가 그 옷들을 똑같이 만든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후작부인은 발렌시아가를 산세바스티안이란 도시에 있는 디자이너를 소개해 주고 견습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여기서 부터 발렌시아가는 패션계 경력이 시작했습니다.

그가 까사고메즈에서 견습으로 일을하고 16살때가 되었을 즈음엔 주변에서 발렌시아가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917년 그는 자기 이름을 딴 가게를 처음으로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떤 그는 가게가 잘 되었습니다.

사실 세계 1차대전이 터지면서 파리의 귀족들이 휴양지로 피신을 오게 되었던거였습니다.

그래서 유명 디자인들이 콜렉션을 휴양지에서 공개하였습니다.

그때 발렌시아가의 가게도 같이 주목을 받게 되었던 거였습니다.

아무튼 발렌시아가가 승승장구 하면서 잘나나던 귀족들이 굳이 파리에 가지 않고 가까운 발렌시아가의 가게에 많이 찾아오게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발렌시아가는 자신의 이름을 딴 가게를 스페인 곳곳에 내고 어머니의 이름을 딴 가게도 오픈했습니다.

어머니 이름을 딴 가게에서는 가격을 낮추고 대중들의 진입 장벽을 낮췄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발렌시아가는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파리로 거쳐를 옮겼습니다.

 

2.발렌시아가의 새로운 도약

그가 프랑스로 옮겨와서 파리에 첫샵을 냈을때는 1937년 이였습니다. 그의 나이는 42살이였습니다.

그 당시 늦은 나이로 가장 큰 패션의 무대 파리에 첫샵을 냈는데 더큰 무대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발렌시아가는 유행을 따르지도 않고 10년을 앞서간 패션이였지만 더욱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는 홍보를 하고 광고를 하는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계속하여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오뜨꾸뛰르(맞춤복)이 아닌 쁘레따 뽀르떼(기성복)패션이 유행을 하게 되자 그는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힐 사람이 없다면서 패션업계에서 1968년 돌연 은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뒤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발렌시아 사후에 브랜드 가치는 계속하여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하여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면서 30년을 버티게 되었습니다.

1997년 발렌시아가는 유명하지 않은 26살의 디자이너를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니콜라 게스키에레스 였습니다. 그는 모털사이클 백이라고 하는 라리앗 백을 선보이면서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적자를 기록하던 발렌시아가를 흑자로 돌려 놓으면서 그는 평론가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극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사랑하는 발렌시아가 한때는 잊혀져갔던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부활을 보면서 앞으로의 횡보를 기대해 보게 되는대요. 천재 한명이 만든 브랜드가 발렌시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