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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역사

(브랜드 이야기) 뜨거운 매운맛 타바스코 핫 소스

by motomose 2024. 8. 11.

타바스코 로고

1.타바스코의 시작

2차세계 대전 직전 영국 정부에선 영국제품만 쓰자라는 캠페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회의 식탁에는 타바스코 소스가 하나씩 놓여있었습니다.

타바스코는 미국제품이므로 식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이 의회에서 계속 나왔지만 , 하원의원들이 그 의견에 결사 반대를 했습니다.

지금이야 음식이 다양하지만, 과거 산업혁명 이전에는 투박했던 음식은 소스가 없으면 먹기 힘들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다양한 케첩 우스터소스 타바스코 소스 같은 다양한 소스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타바스코라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은 원래는 뉴올리언스의 은행가 애드먼드 매킬레니 였습니다.

그는 결혼을 상류층 집안과 하게 되었고  전형적인 미국 남부 상류층 코스를 밟은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상류층의 삶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남북전쟁이 반발하면서 장인어른의 사탕수수밭에 있는 암연광산을 북군에서 이 과안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의 가족들이 피난갔다가 돌아왔을땐 이미 그곳은 폐허가 되어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먹고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할려고 했을때는 이미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고 지인들 친척들도 다 떠나버린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 애드먼드의 눈에 띈게 핫소스였습니다.

사실 핫소스를 처음만든건 애드먼가 아니였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사업가 이자 정치인이였던 먼셀 화이트 였습니다.

화이트 역시도 부자였고 사교 파티를 많이 열었는데 그가 사교파티에서 처음 선보였던 소스가 타바스코 고추 소스였습니다.

화이트가 타바스코 고추를 1849년부터 재배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애드먼드의 타바스코보다 20년 앞선것이였습니다.

어쨌든 1862년 애드먼드의 타바스코가 만들어지기 6년전 화이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화이트의 타바스코 소소도 같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애드먼드는 장인이 소유한 에이버리 섬에서 첫 타바스코 공장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때 지금의 트레이드 마크인 핫소스 병은 뉴올리언즈에 글래스 워크라는 곳에서 병을 주문한 것이였습니다.

애드먼드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마켓팅에 주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1870년 애드먼드는 타바스코 레시피를 특허러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가 레시피를 특허등록을 한 이유는 특허등록한 상품을 팔고 있다는 마켓팅을 하기 위한 이유와 또 다른 사없가들이 따라 만들수 없게 하기 위한것 이였습니다. 

사실 그가 특허등록을 할때 실제 타바스코 레시피보다 훨씬 어렵게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는데 이유는 경쟁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입소문을 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도매상에게 까지 알려졌고 도매상들이 이 타바스코 소스를 전국적으로 판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산업혁명때라 모든것들이 대량생산으로 기계로 만들어졌지만 이 타바스코 소스 만큼은 핸드메이드로 만드는것을 고집했습니다.

애드먼드는 완벽한 사업가였습니다. 그의 탁월한 경영과 좋은 제품으로 인해 타바스코는 19세기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2.타바스코 소스의 경영

애드먼드는 1890년에 사망하였고 , 장남인 존 매킬레니가 이 사업을 이어 받게 되었습니다.

존 매킬레니는 사실 아버지 만큼 유능한 사업가는 아니였습니다.

그는 홍보와 마켓팅에 돈을 쏟아 부었지만 타바스코를 주제로 만든 오페라를 만드는가 하면 엉뚱한 곳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어쨋든 이 타바스코소스는 굴같은 해산물요리와 잘 어울렸습니다.

존은 곧바로 굴 유통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사업이였습니다.

그가 사업을 벌려도 너무나도 크게 벌리고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존이 계속하여 경영을 엉뚱하게 하면서 사업을 할 사람이 필요했고 존의 동생 애드워드가 이때 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애드워드는 형이 벌여놓은 사업을 수습하였고 , 생산 프로세서부터 개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애드워드는 이 때 위스키 제조사 잭다니엘과 손을 잡았습니다.

기존에는 핫소스를 토기에서 생산하였는데 이 잭다니엘과 손을 잡으면서 오크통에서 소스 생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굉장이 좋은 아이디어였고, 그 다음으로 애드워드는 식당과 계약을 맺고 식당테이블에 타바스코 소스를 비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타바스코는 고추 이름이자 멕시코의 지역이름이였는데 애드워드는 그 이름을 혼자만이 사용하고 싶어했습니다.

애드워드는 타바스코라는 이름을 독점으로 혼자 쓸수 있게 특허를 내는데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상표법은 1905년에 만들어졌는데 애드워드는 제일 먼저 선수를 쳤던 것이였습니다.

그가 타바스코의 상표권을 따면서 오리지널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고 중소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애드워드는 1949년에 사망을 하고 그 이 후 그의 조카 월터 매킬레니에게 넘어갔습니다.

월터는 사실 훈장도 많이 받은 전쟁영웅이였고 그의 인기에 힘입어 사업또한 잘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군대 인맥을 총동원해서 세계적으로 사업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과 아시아에까지 타바스코소스가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타바스코 소스의 너무나도 많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만 해도 수작업으로 소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월터는 어쩔수 없이 판매량으로 인해 소스를 대량생산체제로 만들고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세계에 타바스코소스를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매운맛 뜨거운맛 피자먹을 때 꼭 생각나는 이 소스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맛

오늘은 피자와 핫소스를 먹으면서 저녁에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야 겠네요

앞으로도 타바스코 핫소스의 흥행을 기대해보며 다음 이야기에서 만나겠습니다